그리운고향산천

[스크랩] ‘농우 (農牛)` 얘기

털보(고흥) 2012. 10. 21.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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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고향의 산자락은 푸르기만 한데 풀을 뜯던 그 많은 소들과 꼴을 베는 초동(樵童)들, 소맥이던 초등학생(初等學生)들은 모두다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허리까지 쑥쑥 자란 풀들만이 넘실대고 있다.


누구나 마찬가지였지만 필자네는 필자가 초등학교(初等學校) 다닐 때쯤 ‘배내기 소’를 키웠다. 여러 자식들 먹이고 입히느라 어려운 가정형편(家庭形便) 때문에 송아지를 사서 키울 수 없어서 남의 집 암 송아지를 가져와 어미 소로 키워 새끼를 낸 다음 그 어미 소를 주인집에 돌려보내는 사육(飼育)의 방식이다.

밭갈이 하는 농우


소 키우는 집 아이들 대부분은 풀이 돋기 시작하는 봄부터 서리가 내려 풀잎이 시드는 가을까지 학교(學校)에 갔다 오면 하루에 한 망태씩 소꼴을 베어 와야 했다.


아무리 숙제(宿題)가 산더미 같아도 소꼴이 먼저였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망태에, 지게를 짊어지고 다닐만한 중학생(中學生)쯤 되는 아이들은 바지게에 한 짐씩 소꼴을 베어 날랐다.


친구들과 꼴을 베러 가면 ‘깔(꼴)치기’를 했다. 꼴을 몇 주먹씩 쌓아놓고 4~5미터 떨어진 곳에서 꼴 쌓아 놓은 곳으로 낫을 던져 낫 끝이 땅에 꽂히면 꼴을 가지고 가는 게임이었다.


‘깔치기’에 참여한 아이들 낫이 한꺼번에 여러 명 꽂히면 그 중 제일 반듯하게 꽂혀있는 낫을 가려내 승자(勝者)를 뽑았다. ‘깔치기’ 게임에서 몇 번 이기는 날이면 금방 한 망태 가득 풀이 차올라 다른 아이들이 열심히 꼴을 벨 때 한가하게 놀기도 했다.

풀밭과 꼴지게

고향(故鄕)을 생각할 때면 오래된 느티나무와 ‘끄으름’ 냄새, 그리고 외양간에서 ‘쇠방울’을 절렁거리며 김이 무럭무럭 올라오는 쇠죽을 먹던 소가 생각난다.


커다랗지만 순하기만 하던 눈을 껌벅이며 말없이 쳐다보다간 ‘음메-’ 하며 싱겁게 울던 소가 지금이라도 아파트 모퉁이에서 저벅저벅 걸어 나올 것만 같은 착각(錯覺)에 사로잡힌다.


송아지 송아지 얼룩송아지 / 엄마소도 얼룩소 엄마 닮았네. / 송아지 송아지 얼룩송아지 / 두 귀가 얼룩 귀 귀가 닮았네. 출생지에 상관 없이 경주(慶州)에서 한 시절을 살다 간 박목월(朴木月)의 '얼룩 송아지'가 합창(合唱)이 되어 귓전에 울리기도 한다.

농우와 송아지



그러나 이제는 그토록 순하던 농우(農牛)가 우리들의 곁에서 거의 사라지고 보이질 않는다. 시골길을 걸어도 얼룩덜룩한 젖소나, 호주산(濠洲産) 비육우가 있을 뿐이다.


농업의 기계화(機械化)가 산골마을에까지 번져 더 이상 농우(農牛)를 키울 필요성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먹거리가 변변찮던 시절, 소는 여름내 갯둑이나 산자락에 끌고 나가 풀들을 뜯겼다. 외동읍(外東邑)에서는 이를 ‘소맥이기’라고 했다. ‘소맥이기’는 초등학교(初等學校)에 다니는 남자 아이들의 전담(專擔) 업무이기도 했다.


갓 태어난 송아지는 강아지만큼이나 귀엽고 순했다. 조금 크면 여기저기 겅중거리며 장난이 심해지는데 뿔나올 자리가 불룩해지면, 제법 머리를 들이받는 시늉을 하기도 한다.


이때가 되면 코뚜레를 만들어 꿰게 되는데 ‘노간주나무’ 줄기나 소나무뿌리를 벗겨 구부려 끝을 뾰족하게 한 후 소의 비강막(鼻腔幕)을 뚫고 꿰어 ‘이까리’를 연결하여 ‘말띠(말뚝)’에 묶어 제 맘대로 뛰어 다니지 못하게 했다.

코뚜레


향리에 살 때는 선친(先親)께서 송아지를 끌고 솔밭으로 가서 강제(强制)로 코뚜레를 꿰는 것을 본 일이 있지만, 겁이 나서 가까이는 못 가고, 먼발치에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기만 했다.


귀여운 송아지도 이때부터는 자신의 몸을 토막 내어 사람들의 입으로 들어가기 전까지 자기를 잡아먹을 사람을 위해 문자 그대로 ‘소같이’ 묵묵히 일만 해야 한다.


소는 농번기(農繁期)가 시작되면 쟁기를 끄는 논갈이에서부터 한 햇일을 시작하는데 일하다 지친 소는 막걸리나 미꾸라지를 먹이기도 했다.

막걸리와 미꾸라지는 댓병(1.8리터)에 담은 후 한 사람이 소의 고삐를 잡고 주둥이를 높이 들면, 다른 한 사람이 댓병에 담은 술과 미꾸라지를 주둥이에 넣고 들이 붓는 방식이었다.

여름이면 소에 달라붙어 피를 빨아먹는 쇠파리가 들끓어 등판에 온통 피가 흐르기도 했는데 입에 물고 분무하는 살충제(殺蟲劑) 펌프(‘후마끼라’펌프라고 하는데 일본제였다)를 뿌려주거나 개울에 데려가 물로 씻겨 주기도 했다.


기르던 소를 장(場)에다 내다팔 때는 너무나 허전하여 모두들 말이 없었다. 아이들은 눈물을 흘리고, 어른들도 정(情)이 들어 침울해 했는데 소도 눈치를 채고, 외양간에서 나오지 않으려 뒷걸음을 치면서 큰소리로 울어대곤 했었다.


죽으라고 일만 시키는 주인(主人)이지만 정이 들었고, 주인을 위해서라면 더 고된 일을 하더라도 떠나기 싫어서였던 것이다. 소와 개보다 못한 군상(群像)들이 들끓는 지금 세상이 저들 소와 개에게서 배울 대목이 아닌가 한다.


‘쇠전’이 서는 장터에 가면 이 마을 저 마을에서 몰려 온 소들이 돈으로 팔리거나, 맞바꾸기도 했다. 소를 고를 때는 입을 벌려 이를 들여다보고 나이를 헤아리기도 하고, 뿔의 모양과 엉덩이를 비롯한 체형(體形) 등을 꼼꼼히 살피기도 했다.

입실장 '쇠전'



농약(農藥)이나 제초제가 뿌려지던 초기에는 제초제(除草劑)가 묻은 논둑의 풀을 베어다 먹인 소들은 비쩍 마르고, 힘을 쓰지 못했다고 한다.


소의 먹이는 여름에는 꼴을 베어다 먹이고, 겨울에는 볏짚과 말린 콩대를 썬 것에다 겨와 뜨물을 섞어 끓인 쇠죽을 쑤어 먹였다.


한겨울에는 밤마다 소의 등에 짚으로 짠 덕석을 뒤집어 씌워 찬바람을 막아주었고, 외양간에도 가마니 같은 덮개를 쳐 주었는데 아주 추운 밤이면 소도 잠을 못 자고 울어대곤 했었다.

'덕석'을 덮은 소


승냥이가 있던 시절에는 이따금 산에서 내려온 ‘승냥이’들이 외양간을 얼씬거려 밤새도록 소가 큰소리로 울었고, 등불을 켜든 어른들이 개를 풀고 집 주변에 내려온 ‘승냥이’를 좇았다.


어릴 때 들은 얘기지만 당시의 산간마을에서는 집에서 키우는 소가 이따금 주인을 맹수(猛獸)로부터 지켜주는 일화(逸話)가 전해지고 있었다.


저녁 늦게 ‘마실’을 갔다가 소를 끌고 오던 농부(農夫)가 ‘승냥이’들의 공격(攻擊)을 받게 되면, 그 소가 자기 주인을 지키기 위해 사력(死力)을 다했다는 얘기였다.


개처럼 생긴 ‘승냥이’들이 빙글빙글 맴을 돌면서 사람에게 다가오자, 소가 뿔을 휘저으며 들이받는 시늉을 하여 겨우 집 가까이 다다랐는데, 주인이 곁에서 함께만 있어주면 소도 용기(勇氣)를 내어 싸운다고 한다. 이 경우 집에 와서 보면, 소의 잔등이 온통 땀으로 젖어 있었다고 한다.


소는 큰 벌이가 없던 시골에서는 큰 재산(財産)이었으며, 이 때문에 송아지가 태어나면 집안의 경사(慶事)였다. 아들자식을 고등학교나 대학(大學)에 보낼 때는 등록금(登錄金)이 되어주었고, 딸자식이 시집을 갈 때는 자신을 희생하여 혼숫감을 마련해 줬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정마다 등록금(登錄金)과 혼숫감을 마련해 주던 이들 농우도 집집마다 경운기(耕耘機)가 들어서면서 소리 없이 사라져 버렸다.


소꼴을 베어다 먹일 일손도 모자라고, 쇠죽을 끓일만한 땔감이나 아궁이도 사라졌기 때문에 비싼 사료(飼料)를 쓰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노인(老人)들만 남은 시골에서는 그 부담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도 강원도(江原道)의 가파른 ‘따비밭’에는 여전히 소로 쟁기질을 한다. 급경사진 밭이나 다락 논에는 경운기(耕耘機)가 들어갈 수도 없고, 기진맥진한 노인들로서는 경운기를 조작(造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옛적 농우(農牛)들은 1년 365일 날만 새면 무슨 일이든 했지만, 요즘 농우들은 옛적 농우(農牛)들보다 그만큼 많은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쟁기질을 제대로 못한다는 것이다. 제대로 배울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은 농한기에 타이어를 쟁기대신 뒤에 매달고 쟁기 끄는 훈련(訓練)을 시킨다고 한다. 몇 년 후면 그 농우(農牛)도, 쟁기도, 그들 노인들도 모두 어디론가 떠나버리겠지만, 세상이 희한하게 변하는 것만 같아 씁쓰레한 기분이 된다, 농우를 예찬한 강희창의 ‘농우(農牛)’를 소개한다.


농우 農牛


강희창

공동묘지에서 집까지는 꽤나 먼 편이다
말뚝서부터 펼친 하루치의 원을
멍에인 듯 지거나 끌거나 갈거나


우직하게 침묵하며 걸어가는 참이다
저무는 날의 고삐를 쥐고 슬며시
돌아보면 거기 길이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차분히 밟히는 또렷한 길

한번쯤은 흐트러질 법도 한데


흔들리다가도 다시 자리하는 무게중심

슬픔 다독이는 코뚜레에 선한 매무새지만
호되게 받히거나 채여보면 깨닫는 어른됨


다 주고 홀연 터전을 등지는 것은 얼마나 허허로우랴
차라리 나는 멀찌감치 줄잡고 따르던 장님이었다.

풀 뜯기고 외양간에 들여 매 놓은 저녁께
무심히 들여다 본 그 커다란 눈망울 속
허리 두드리며 들어앉으신
아.버.지

[이용우님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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